우리 기독자들이 십자가의 생활을 할 때에는 여러가지 어려움이 옵니다. 그래서 그걸 가리켜서 16절에 '그러므로 우리가 낙심하지 아니하노니' 그러므로라 말은 십자가의 생활이 고난이 있지만 환난이 있지만 낙심하지 않는 그 이유를 말합니다.
십자가 생활에 낙심하지 아니하는 이유는 뭐인고 하니 첫째는 겉사람은 후패합니다. 후패라 말은 부패와 다릅니다. 후패라는 것은 깨어져서 못쓰게 되는 것을 가리켜 말합니다. 이 겉사람은 우리의 이 심신으로 된 육을 가리켜 말하는 것이니 육은 세월이 가면 자구 노쇠해지고 쇠퇴해집니다. 이래서, 이 심신으로 된 육은 쇠퇴해지고 노쇠해지고 이것은 다 뿌숴져서 차차 차차 못쓰게 되나 '속사람은 날로 새롭도다' 그러면 겉사람이 이렇게 뿌숴지고 없어지는 동시에 그 속에 속사람이 점점 성장되고 또 온전해져 가는 것을 말합니다.
그러면 겉사람은 심신의 형체와 그 정력을 말합니다. 그러면 겉사람이 후패해진다, 사람의 심신으로 된 그 형체는 그 정력이 차차 차차 감퇴 되어진다 없어진다 그말입니다. '겉사람은 후패하나' 이 심신으로 된 이 정력의 사람은 차차 차차 늙어서 쇠해져서 못쓰게 되나 하는 그말입니다. 후패라 하는 그 말은 썩는다는 말이 아니고 노후의 뜻을 가리켜서 말합니다. 일본말로는 야부레라 하는데 인제 여게서는 우리 나라 말로는 그저 후패라고 이래 썼으나 썩는 것이 아니고 차차 노쇠해져서 못쓰게 되는 것을 말합니다.
속사람은 뭣을 가리켜 말하는 것인고 하니 우리의 심신이 예수님의 대속의 피와 진리와 성령과 영생으로 우리는 살아난 이것이 속사람입니다. 예수님의 3가지 대속의 공로와 진리와 영감과 영생으로 살아난 것이 이것이 속사람입니다. 이 사람은 '날로 새로와진다' 날로 새로와진다 하는 그 말은 진리의 기능으로, 성령의 기능으로, 또 사죄의 기능으로, 칭의의 기능으로, 하나님과 화친의 기능으로, 하나님을 향하는 영생하는 기능으로 점점 변화돼 간다 그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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