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이 심신도 완전 구원을 법적으로는 얻어 가지고 있는데, 이것이 법적으로만 되어 있는 그것은 순전히 객관 역사지 자기 주관에는 상관이 없는 것인데, 객관의 역사인 하나님 편에서 법적으로 이렇게 대속해서 구속 입은 이 심신이 이것이 지식으로 새로와져야 됩니다.
지식으로 새로와져서 ‘나는 하나님의 이 대속을 법적으로 입고 있다’ 하는 그것을 자기의 지식으로 알아서 지식이 새로와지고 또, 그라고 난 다음에는 ‘나는 이 법적으로 대속을 입은 자이니 나는 지금 대속 입은 자로 살아야 되겠다’ 할 때에 이것이 자기가 행할라고 애를 쓰는 것입니다. 이럴 때에 우리에게는 마찰이 있습니다.
우리가 법적 구원을 얻은 것 가지고는 아무런 세상에서 거리낄 게 없고 마찰될 것이 없으나 법적으로 이거 구속받은 이것이 자기 지식으로 이것을 자기가 가질라고 그 지식의, 지식이 이 법적 구속을 받은, 받았다 하는 그 지식이 새로와질 때에, 법적 구원을 받았다는 그 지식을 가지게 될 때에 이제는 그 지식이 지식과 서로 마찰이 옵니다.
그 지식이 지식과 세상에 있는 이 법적으로 구속을 받지 못한 인간들의 지식과 법적으로 구속을 받았다는 것을 믿는 자의 그 지식과 거게서 마찰이 오고 또, 자기 안에도 벌써 이럴 때에는 두 지식이 돼서 법적으로 구원 얻었다는 이 지식은 차차 점령을 해서 전체의 지식이 법적으로 구속받은 자라는 것을 자인하도록 할려고 이와 같이 하고 또, 옛사람에게 속한 것은 이것을 부인해서 예수 믿기 전과 같은 그런 자기의 그 심신으로 이렇게 인정을 할라고 자꾸 이제 인정 분쟁이 나고 투쟁이 나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내나 우리 안에 싸움이 있다는 그 싸움인 것입니다.
이래 가지고 법적으로 얻은 이 구원의 심신이 지식으로 이것이 새로와져서 얻게 되고 지식으로 얻고 끝나 버리면 그걸로 끝나 버리는데, 지식으로 얻는 그거는 실상이 아니기 때문에 지식으로 얻은 것이 실지로 그 행함을 통해서 실상이 되어집니다.
그러면 법이 이것이 자기의 지식화되고 지식이 행위를 통해서 실상화되어지는 것이기 때문에 그래 가지고 날마다 겉사람, 이 심신으로 되어 있는 이 심신이 이것이 영생할 수 있는 이 심신으로 점점 자꾸 그 성화돼 가고 있다. 변화돼 가{지}고 있다. 변화돼 가(지)고 있는 것, 변화돼 가고 성화돼 가고 있는 것을 가리켜서 이거 날로 새로와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