② 사랑의 구별에 대해
○○○목사님이 나한테 편지한 걸 내가 어제 읽어 봤는데 그 편지의 강령을 간추려 말하면, 모든 것 다 감사하다는 그런 인사를 다 하고 난 다음에 내게 대해서 또 좋은 그런 충고의 말을 해 주는 것을 내가 봤습니다.
그 충고의 말은 무슨 충고의 말이냐 하면 ‘권위보다 사랑이요, 두려움보다 사랑입니다.’ 어찌 됐든간에 사랑이 내가 모자라는 것과 모든 것보다도 사랑이 제일 원하니 그 사랑을 해 달라는, 그 사랑이 없어서 그렇다는 그런 말을 해 준 데 대해서 내가 대단히 고맙게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 사람의 말이 그 사랑에 대해서 사랑의 그 정의를 아는 것이, 또 나와 아는 데 대해서 조금 차이가 있지 안했나 그런 것도 생각합니다. 저는 사랑을 달리 압니다.
이래서 “네 몸을 주어서 네게 있는 것을 다 구제하고 네 몸과 생명을 주어서 희생한다 할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아무것도 네게도 소용 없고 남에게도 소용 없다” 하는, 그래서 사랑과 사랑의 이 아주 이질적인 것, 그래서 참사랑은 하나님이 가지신 사랑이 있고 배암의 사랑이 있는데, 이 하나님의 사랑 그 사랑은 그것은 무한이요 영원이요, 하나님의 사랑에는 끝이 없고 변함이 없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사랑은 오늘 사랑하지만 내일 원수가 되면 무슨 소용 있습니까? 오늘 사랑해서 좋은 것 준다고 했는데 그다음에 그에게 사망이 되면 무슨 이 사랑이 되겠습니까? 이러기 때문에 사랑은 전지자만 가질 수 있고 전능자만 가질 수 있고 완전자만 가질 수 있기 때문에 그분만이 가질 수 있는데, 그분의 사랑을 우리가 받아 가지고서 이 사랑 가지고 서로 주고 받고 나누면은 그것은 영원합니다.
이래서 여게서 지극히 크고 영원한 영광이라 하는 이것도 지극히 크고 영원한 영광이 무엇인가? 그것은 이 새사람으로 참사람으로 사는 것, 이 속으로 사는 것, 속 사는 것, 속으로 사는 것, 이건 다시 말하면은 껍데기 속에, 네 가지로 우리가 살아났습니다.
영은 네 가지로 살아났는데 우리의 육은 아직까지 네 가지로 살아나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진리와 영감과 피와 영생으로 우리의 육은 살아나지 못하고 영은 단번에 살아났습니다.
그러면 육이 이게 법적으로 살아났기 때문에 이것을 합해서 속사람이라, 영은 살아났고 아직까지 이 심신으로 돼 있는 육은 완전치 못하지마는 이와 연결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이것은 날로 새롭도다”